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 공화국 (문단 편집) === 제1차 연립정부 === [[러시아 혁명|2월 혁명]]으로 러시아 제국은 무너졌지만 부르주아들은 차르 전제정 못지않게 사회주의를 혐오했고, 사회주의자[* 주로 [[멘셰비키]]]들은 [[마르크스주의]]에 따라 아직 부르주아 정치도 제대로 구현되지 않았던 러시아가 바로 사회주의로 넘어가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이에 따라 부르주아 등을 대표하던 [[두마]] 임시위원회와, [[2월 혁명]]으로 각지에서 구성된 노동자 의회인 [[소비에트]]는 협정을 맺었고, 이에 따라 3월 2일(3월 15일)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입헌민주주의자로서 젬스트보(земство)[* [[제정 러시아]]에서, 1864년의 개혁으로 설치된 지방 자치 기관. 중앙 정부의 감독 아래 주(州), 군(郡) 단위로 구성되어 토목, 위생, 교육, 경제 등의 문제를 맡아보다가 [[러시아 혁명]] 후 없어졌다.]의 지도자인 [[게오르기 리보프]]가 총리가 되었으며 후에 [[입헌민주당(러시아)|입헌민주당]]과 [[10월 17일 연합]]이 임시정부의 세력을 잡게 되었다. 사회주의자로서는 [[알렉산드르 케렌스키]]가 유일하게 개인자격으로 입각했다. 이리하여 신생 러시아 공화국에는 임시정부와 '노동자 병사 소비에트'의 소위 '''이중 권력'''이 탄생하게 되었다. 소비에트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멘셰비키]]들은 '2단계 혁명론'에 따라 부르주아에게 자발적으로 권력을 양도했고 임시정부도 소비에트의 승인 없이는 중요 정책을 결정하거나 집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임시정부와 소비에트는 곧바로 갈등을 벌였다. 소비에트가 즉각적인 [[1차 대전]] 중단을 요구하는 데 비해 임시정부는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2월 혁명 과정에서 소비에트는 무시할 수 없는 군사력을 가졌기 때문에 임시정부가 자신의 의사를 관철할 수 없었고, 결국 이에 따라 전쟁 지속을 주장했던 파벨 밀류코프(Павел Милюков) 외무장관(입헌민주당 소속)이 사임함으로써 임시정부 내각은 무너진다. 이를 4월 위기(Апрельский кризис)라 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의 협상에 따라 6명의 사회주의자들이 추가로 입각하게 된다. 그러나 내각은 일치된 의견을 내놓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분열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러시아 혁명]]은 러시아에 복속된 각지에서 민족주의자들을 자극하여 독립을 선포하도록 했는데,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도 이에 동참해 [[우크라이나 인민 공화국]]을 세웠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파견된 미하일 테레셴코(Михаил Терещенко)는 우크라이나의 독립을 인정했고, 이는 보수적이었던 [[입헌민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또한 새로운 내각은 전쟁을 계속하겠다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기에 이 역시 노동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노동자들은 참지 못했고, [[볼셰비키]]가 주장했던 전쟁 종결에 동조하여 7월 초에 대대적인 봉기를 일으킨다.(= 7월 위기, 7월 시위) 정작 [[볼셰비키]]는 아직 때가 아니라며 봉기를 자제할 것을 요청했지만 노동자들은 스스로 봉기했고, 볼셰비키의 애매모호한 태도가 겹쳐 봉기는 쉽게 진압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